암 통증의 이해 2 – 통증이 주는 신호를 직면하고 받아들여야

2017년 6월 29일 | haeamcare | article, movie

사회적으로 훌륭한 삶이 내 존재의 균형과 맞지 않을 수도 있음을 받아들여야

우리가 통증이 있을 때 나도 모르게 내가 하는 행동을 한 번 보시면 배가 아플 때는 나도 모르게 배 아픈 통처에 온 마음이 갑니다. 그리고 손이 그쪽으로 저절로 갑니다. 그곳을 뭔가로 따뜻하게 감싸려고 하는 본능적 행동이 나옵니다. 이는 내 안의 의사가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모습입니다.

통증이라는 고마운 신호에 제대로 반응해야

첫 번째, 온 마음이 간다는 것은 그쪽에 에너지를 보내달라는 신호에 대응하는 첫 번째 스텝입니다. 첫 번째는 우리의 의념(意念)이라고 하는데 즉, 우리의 주의집중(attention)을 그곳으로 보낼 때 그 다음 스텝으로서 기운과 혈액이 따라가게 되어 있다는 원리입니다.

기운이라는 말은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느끼고 있는 어떤 것입니다. 혈액은 물질적으로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는 것입니다. 의념을 두는 곳에 기혈이 그쪽으로 몰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기혈이 몰려갈 때 그곳이 따뜻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원리대로, 우리가 통증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온 주의집중이 그리로 가는 것이고 그 다음에 손을 얹어서 더욱 주의집중이 가게 만들며, 뭔가를 덮어서 따뜻하게 합니다.

이 조건이 만들어질 때 통증이 확실히 덜해지기 때문입니다. 이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하면 지금 내 자생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 정신을 모으고 손을 얹고 따뜻하게 보살펴주는 행동을 더 그 방향성을 갖고 도와주면 통증이 없어진다는 겁니다.

이것이 신호에 제대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통증이 없어진다는 표현은 통증을 잘라서 던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통증이 주는 고마운 신호에 내가 제대로 반응한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하면 통증을 덜어내고 잘라서 던져버릴까, 이렇게 생각하기보다는 통증이란 고마운 신호인데 이 신호에 내가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반응할 수 있을까, 이렇게 질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통증이 생긴 원인에 직면하는 단계 필요해

통증이 있을 때는 상황과 맥락을 자꾸 살피게 됩니다. 왜냐하면 통증은 뭔가 삶의 생리나 원리에 맞지 않게 살았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삶을 잘못 살았다고 비난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편하고, 반발하고 싶고,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이는 마음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데, 암 환자들에게 ‘이런 통증과 이런 병이 어디에서 왔다고 느끼시나요?’ 라고 질문했을 때 ‘그때 제가 굉장히 무리했습니다.’, ‘그때 마음을 제대로 못썼습니다.’ 이렇게 말하시는 분도 있지만 ‘나는 나름대로 굉장히 열심히 살았고 잘 살았고 건강관리도 잘했는데 도대체 왜 병이 생겼는지 나는 억울하고 이해가 안 갑니다.’ 하는 분들도 꽤 많습니다.

이때 제가 직면의 요소를 이야기하는 것인데요. 우리의 사회적 기준으로 보면 박수 받고 인정받고 칭찬받을 만한 것 중에서도 우리의 저 깊은 무의식적인 생명의 원리에서는 때로 무리인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매우 개별적입니다.

의식·무의식을 포함하여 내게 맞는 균형을 살펴야

예를 들어, ‘나는 내 가족을 위해서 내 주변 누군가를 위해서 무리하면서 밤새 일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뭐가 잘못된 건가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그렇게 생활해도 병에 안 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얼마간 그렇게 했을 뿐인데 큰 병이 걸리는 수도 있습니다.

통증이란 우리가 모두 개별적인 존재로서 의식·무의식을 모두 포함한, 가치판단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의식·무의식을 모두 포함한 그 총체적이고 전인적인 어떤 것에서의 균형의 요소를 다시 살펴봐야 한다는 신호가 통증이고 질병이라고 보시면 좋겠습니다.

나의 존재의 균형에 있어서는 이 정도의 무리가 나의 존재에 있어서는 조금 다시 살펴보고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신호인 것입니다. 사회적으로는 매우 착하고 책임감이 많고 타인에게 기여하려고 노력하고 희생적인 사람들 중에 의외로 암에 걸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사회적 기준으로는 박수 받고 칭찬받고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지만 각자의 기준으로 볼 때, 의식 무의식을 다 포함하면 좀 더 자신을 보살피고 자신에게 에너지를 쏟고 타인을 돌보는 만큼 나를 돌보는 것이 내 기준에서는 균형에 맞는 것이었다는 점을 직면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